행운목 / 마경덕

 


 수반에 담긴 나무토막, 언제 뿌리가 솟나. 얼마나 기다려야 꽃이 터지나. 마디마디 톱날에 잘린 행운목.

 

 지난 봄, 개업한 장수갈비집, 장수를 기원하며 배달된 행운이 길에 버려져있다. 이리저리 밀려 밖으로 쫓겨난 덩치 큰 행운목. 화려한 리본을 달고 의기양양 배달된 행운. ‘祝, 發展’을 외치던 행운, 푸른 이파리 자르르 때깔 좋던 행운, 어서 오세요, 활짝 웃던 행운.

 

  가게 앞, 꽁초가 쌓인 마른 화분. 구겨진 즉석복권, 로또복권, 불발이 된 행운이 버려져있다. 매캐한 연기에, 한숨에 버석버석 타버린 행운. 토막토막 벌겋게 우러나던 행운, 싹둑 가위에 잘린 행운, 대머리 남자의 삼십년 퇴직금을 털어먹고 28평 아파트를 한방에 날리고 몇 달째 ‘점포임대’ 중이다.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 추위에 얼어 죽은 행운. 지나던 개가 찍 오줌을 갈긴다.

 

 

<다층> 2006년 겨울호

 

 
 

 

         토마토가 말하다 / 마경덕

 

                                                        

한 입 깨물면 찍, 물똥을 갈기는 토마토,

토마토는 입이 없다. 둥글고 살진

엉덩이만 있다. 그래서 고인

말이 줄줄 흘러내린다

입이 없는 토마토는 제 안의 슬픔을, 얼룩얼룩

셔츠에 지리고.

그러니까 탐스런 엉덩이 토마토는 울컥

무언가를 배설하고,


나는 알 수 없다

귀보다 말이 많아 그의 마지막 유언을

읽을 수 없다. 내 입은

입이 없는 것들의 가슴을 모른다

헤이. 토마토!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지?

물렁물렁 우물우물 씹히는 토마토


토마토의 붉은 심장이. 침묵이

금세 입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물렁한 말은

혀끝에서 가슴으로 번져간다 

 

셔츠엔 푸르죽죽

알 수 없는 토막말이 적혀 있다

 

 

                                                                           

사진 <파르세인>님 블로그애서

 

 

비둘기가 운다 / 마경덕


종일 지붕에서 운다.

이층 창문, 틈새에 터를 잡고

알콩달콩 살던 비둘기 부부

 

홀시어미, 비둘기 울음이 귀신울음 같다 하고

며느리, 청승맞은 울음이 말 못할 내 설움 같아

그럭저럭

비둘기똥 치우기를 삼 년


늙은 시어미

더는 못 참는다

답답한 그 울음 저승사자처럼 끔찍하고

똥보다 더 독하다고


기어이

아들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자

비둘기 울음 빨라졌다

소리와 불안이 뒤섞여

철제 사다리가 휘청거렸다


분홍발을 가진 새끼 한 마리

퍼덕퍼덕 앞집 베란다 지붕에 내려앉고

나뭇잎 쪼가리, 묵은 먼지가

비닐봉지에 담겨 내려오고 

오 분만에 집 한 채가 철거되었다

 

구우국 구우국

 

비둘기똥 보다 독한 울음이

지붕에서 흘러내린다

 

시에 <2006년 겨울호>

 


                                                                         

                                                                            

          처음 /  마경덕  

 

볏이 보였다

암평아리라고 믿었던 녀석의 머리에서

젖니처럼 볏이 돋았다

발톱이 여물고 정수리에서 맨드라미가 피고

녀석이 목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럴 듯 모가지를 늘리고 소리를 뽑는데,

끄륵끄륵 울음이 끓었다

지독한 음치였다

암, 암, 목청이 트여야 어른이 되는 거여

할머니는 모이를 한 줌 마당에 뿌리셨다


계란이요. 계란

아침 골목을 흔드는 확성기 소리

계란장수 낯이 설다

처음 해보는 장사란다

마수걸이라고 작은 계란 한 개를 내민다

영양 만점 초란(初卵)이요

두 손으로 피 묻은 계란을 받아들었다

손바닥이 두근거렸다


계란판에 담긴 서른 개의 무녀리

해산의 통증이 묻어있다

초산(初産)이다

모두 첫걸음이다 

 

 

수의(壽衣) / 마경덕

   

 

  이게 옷이에요? 무슨 옷이 이래요? 아버지는 명주옷만 입으셨어요. 어머닌 비단옷이 싫으세요? 빵구 난 런닝구만 여태 입었잖아요. 뻣뻣하고 모양 없는 이런 옷은 딱 질색이에요. 이 옷을 걸치고 따라갈 수 없어요. 저는 못가요. 돌아올 수 없잖아요. 어둡고 먼, 그곳에 아버지도 계시잖아요. 그래서 더욱 싫어요. 어머니 혼자 가세요. 이 꼴 저 꼴 만나면 가슴을 치셨잖아요. 니 애비 갈 때 따라갈 걸, 따라갈 걸,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울어요? 지겨워요. 기침 좀 그만하시고 궁궁이잎에 싸둔 명주옷부터 버리세요. 입을 사람도 없잖아요. 그래요. 가실 때 제발 가져가세요. 그런데 옷 같잖은 게 왜 이리 비싸요? 아무 거면 어때요. 가면 그만인데 무슨 상관이에요.


 베란다 빨랫줄에 삼베옷이 걸린다 얼굴가리개 장갑 버선 속바지 단속곳 속적삼… 바람을 쏘이는 누런 수의, 옷이 살아 움직인다. 살고 싶다고, 더 살 수 있다고, 펄럭펄럭펄럭.


                  ' 사람의문학' 겨울호

 

 

 

     접시꽃 핀다 /  마경덕

 

                                          
  튀밥장수 영감 접시꽃 담벼락 아래 손풍로를 돌린다. 지루한 하품이 풍로를 돌린다. 강냉이 콩 누룽지 깡통 일렬로 줄 맞추고 압력계기판 눈금이 달아오르면 담장 위 키다리 접시꽃이 아슬하다. 고소한 냄새에 목을 뽑은 접시꽃, 한 입만, 한 입만, 빈 접시를 내밀고

 

 뻥!
 튀밥이 날고 
 쨍그랑!
 접시 깨지고

 

  얄팍한 소갈머리에 뭐 담을 게 있어. 쯧쯧, 혀를 차는 영감, 평생 뻥만 치다 늙은 장돌뱅이 영감. 속 깊은 자루에 튀밥을 담는 동안 귀가 먹먹한 접시꽃, 재빨리 깨진 접시를 주워 모은다. 층층 다시 접시가 쌓이고 저 튀밥 언제 한 입 먹어보나, 쩍 입을 벌린 접시꽃, 뜨거운 햇살이 뱅글뱅글 손풍로에 감기고, 담장 위 접시꽃, 얼른 새 접시를 꺼낸다. 

 

'포스트모던' 

 

 

 

 

                                                                                       사진 <르네>님 블로그에서

 연장통 / 마경덕

 

 장례를 치르고 둘러앉았다. 아버지의 유품(遺品)을 앞에 놓고 하품을 했다. 사나흘 뜬눈으로 보낸 독한 슬픔도 졸음을 이기진 못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상자는 관처럼 무거웠다. 어서 짐을 챙겨 떠나고 싶었다. 차표를 끊어둔 막내는 자꾸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걸 어쩐당가, 마누라는 빌려줘도 연장은 안 빌려 준다고 해쌓더니… 어머니는 낡은 상자를 연신 쓰다듬었다.

 

  관뚜껑이 열리듯 연장통이 열리고 톱밥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과 땀에 절은 아버지, 먹통, 끌, 대패, 망치를 둘러메고 늙은 사내가 비칠비칠 걸어 나왔다. 몽당연필을 귀에 꽂은 아버지, 대팻밥이 든 고무신에서 고린내가 풍겼다.

 

  자식 농사만은 대풍을 거두셨다. 망치는 부산으로, 톱은 서울로, 줄자는 울산, 말라붙은 먹통은 분당으로, 아버지는 그렇게 아홉 번을 찢어지셨다. 가방을 뚫고 나온 이 빠진 톱날이 악어처럼 사나웠다.

 

   시와정신 (2006년 겨울호)

 

 

                                                                                  

 

찔레 능소화 / 마경덕

 


  능소화 한 그루 담 밑에 심지요. 가시 푸른 찔레 곁에 심지요. 찔레는 고인 봄을 울컥울컥 게우느라 제 가랑이 새로 바람 드는 걸 모르지요. 만삭인 몸을 앓느라 제 발 밑을 모르지요. 몸 풀고 한가한 그때 곁이 보이겠지요. 꽂아 두면 눈트는 쇠심줄 찔레, 발등 밟고 오른 능소화를 밀쳐내고 싶겠지요. 붉은 꽃잎에 가시를 디밀며 시샘도 하겠지요. 아니요. 이건 미련한 사람 생각이지요. 꽃빛에 취해 능소화를 사랑할지도 모르지요. 어린 능소화를 들쳐업고 담벼락 끝에 올라서서, 사람 사는 꼴 다 보여줄지도 모르지요. 


 

 시향 <겨울호. 재수록>

이 게시물을..